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애도 과정에 대하여

존 볼비는 사랑의 관계, 누군가를 돌보는 일에 있어서 분리불안과 슬픔의 경험은 불가피한 것이라고 했습니다.사별로 인한 슬픔 초기에는 심한 분리불안을 경험하고, 슬픔의 후기에는 고통 속에서 위로를 받기 위해 노력이 계속되지만,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이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혼란과 좌절, 무력감을 경험하게 됩니다.존 볼비는 이러한 애도 과정을 4단계로 설명하고 있는데, 모든 유족이 이러한 단계를 동일하게 거치는 것은 아니며, 유족의 성향이나, 처한 상황 등에 따라 단계가 생략될 수도, 한 단계에서 오랜 기간 머물 수도 있습니다.

1단계 무감각, 마비, 충격, 망연자실

사랑하는 사람 또는 지인과 갑작스럽게 사별한 초기에는 이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이 아니야.’, ‘이것은 꿈이야.’ 등과 같이 강하게 부정을 하거나 멍한 상태가 됩니다. 또한, 큰 충격으로 인해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여 극도로 냉정해지기도 합니다.

특히 사별로 인해 수습해야 하는 행정적 또는 법적 절차가 발생하는 경우에는 이러한 것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하여 그리움이나 슬픔을 뒤로 미루게 됩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사망할 경우 고인의 어머니는 큰 충격으로 인해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슬픔으로 통곡에 빠져들게 되지만, 고인의 아버지는 장례절차를 준비하거나 경찰 조사를 받기도 합니다. 또는, 소송 등 법적 절차 등의 현안을 처리하기 위해 놀라울 정도의 냉철함을 보이기도 합니다.

상황을 수습하는 과정이 마무리되면 본격적인 슬픔이 시작되기도 하며, 어떠한 경우에는 ‘고인의 사망이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오늘이라도 다시 문을 열고 돌아올 것 같다’라는 느낌 때문에 무감각한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기도 합니다. 이 단계는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2단계 그리움, 갈망, 분노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한 무감각과 마비의 단계 이후로는 사망한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갖고, 고인이 사용했던 물건을 그대로 보관하거나, 고인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뒷모습만 봐도 고인이 살아 있다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또한, 고인이 방에 혹은 화장실에 있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들어 이곳저곳을 반복적으로 둘러보기도 합니다.
고인이 살아 있었을 때의 표정, 행동, 언어 등 하나하나를 매우 세세하게 기억하고 되새기며,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그 표정이, 그 말 한마디가 어떠한 의미였는지 고민하고 분석합니다.
사망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는지 반복적으로 생각하고 후회와 죄책감을 갖기도 합니다.분노는 사별을 경험한 유족이 느끼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으로 더는 고인이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발생합니다. 그러므로 고인과의 사별을 받아들였다는 의미에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기회를 제공해준다는 긍정적인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분노는 고인에 대한 원망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있고, 가족이나 친척, 지인, 이웃 등 특정 대상에게 책임 전가와 분노의 감정으로 표출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인관계의 단절, 갈등, 희생양 등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3단계 혼란, 절망

상실은 남아있는 사람의 내적 세계를 동요 속으로 몰아넣게 되면서 삶의 희망을 송두리째 빼앗아가게 됩니다. 함께 있었을 때를 그리워하며,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가치를 느끼지 못합니다. 또한, 남아있는 사람의 근본적 문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갔다는 것뿐만 아니라 고인이 필요할 때 없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 자녀의 경우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하나 어머니가 사망한 이후 입학식이나 졸업식, 결혼식, 출산 등과 같은 기념일 또는 행사 같은 경우, 또는 어린 자녀의 경우에는 머리카락을 묶어주거나 옷을 세탁해주는 것, 식사를 챙겨주거나 등교를 돕는 등 소소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고인의 빈자리를 경험하면서 ‘내가 필요할 때 없다’라는 생각이 들고 이로 인해 고인에 대해 원망하거나 미움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2장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인에 대한 미움과 분노, 원망의 감정은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죄책감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에 남은 유족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겨주기도 합니다.
또한, 사별한 사람들은 우울증이나 무력감, 무망감(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별 이후의 우울증의 주요 증상은 죽음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상황 또는 말, 행동 등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을 갖거나, 식사, 수면, 대인관계, 직장유지 등 일상생활에서의 기능이 현저히 손상되거나 지연되기도 하며, 의미 없는 생각에 대해 지나치게 몰두하고, 고인에 대한 목소리나 모습을 일시적으로 듣거나 보는 환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무력감과 무망감(미래에 대해 희망이 없음)은 세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지 못하는 형태로 나타나는 경향이 흔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세상의 즐거움은 의미가 없고,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고 믿습니다. 이러한 혼란은 자신에게 큰 위협으로 다가와 외부 자극을 차단하거나 자신이 경험하는 상황을 회피하려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다는 감정 때문에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삶을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그러나 이러한 애착의 완전한 상실은 또 다른 애착의 과정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이며, 애착의 대상이 완전히 단절되어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다음 단계인 다른 애착을 찾는 기회가 됩니다. 특히 신뢰가 형성된 또 다른 애착 대상이 존재한다면, 좀 더 빨리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유족에게 위로와 격려를 해줄 수 있는 지인(가족, 친인척, 이웃 등)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4단계 재조직, 재조명

칠흑 같은 어두운 긴 터널을 통과하는 과정이 얼마간 지나게 되면, 고인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때에 도달하게 됩니다. 고인을 떠올리거나 고인이 사용하던 물품, 고인의 사진, 기일이 되어도 큰 감정의 동요가 없게 됩니다. 특히, 고인의 떠나감을 숙명으로 받아들이거나 우울증 등 인간의 의지나 노력으로는 막을 수 없는 사별로 받아들이기 시작하기도 합니다.
학교나 직장, 대인관계, 일상생활 등 주요 과업을 수행하는데 특별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단절된 대인관계의 경우 긍정적인 방향으로 회복되거나, 새로운 사람들과의 대인관계를 형성하여 삶의 활력을 되찾게 됩니다. 때로는 흥미로운 취미활동이나 봉사 등을 통해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는 활동을 하기도 합니다.
결국, 나의 삶과 고인에 대한 애도를 적절히 분리할 수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인과의 사별로 인한 슬픔과 현실과의 적절한 타협을 통해 삶도 안정화 되고, 건강한 애도의 과정도 함께 영위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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